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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는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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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nancial Solution 2021. 1. 7.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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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두가 아는, 현대카드의 특별함

 

현대카드는 소비자들의 인식에서 카드업계의 One and Only 입니다. 카드사 중 거의 유일하게 브랜드 가치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디자인과 홍보, 이걸 모두 아우르는 브랜드 빌딩 능력이 경쟁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죠.

 

현대카드가 디자인 혁신으로 업계를 뒤흔든 게 십수 년이 지났는데, 경쟁사는 이런 옥색에 궁서체 디자인을 내 놓고 있습니다. 정말 이래도 될까 싶은데, 그래도 됩니다. 왜냐면 현대카드는 몇년간 매출이나 영업이익 면에서 거의 성장을 보이지 못했던 반면, 우리카드는 레드오션 시장에서 연간 10% 수준의 빠른 성장을 보여줬죠.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현대카드는 디자인만 특별하지 않습니다. 고객경험을 엄청나게 중시하는 회사니까요. 리뉴얼된 현대카드 앱은 좀 그렇고... 다른 카드사들도 상향평준화 되었지만, 카드 앱이 처음 나오던 시점의 현대카드 앱의 UI, UX는 다른 레벨이었습니다. 다른 카드사 앱 뿐만 아니라 모든 서비스 앱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카드를 발급하면서 겪은 고객경험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메이저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지인이 KB카드를 신청했는데 충격적인 경험을 했죠.

1일차) 신청완료되었다고 페이지만 나오고, 다른 알림 없음

2일차) 필요한 서류를 보내달라고 전화가 옴, 바로 제출

3일차) 재직중인 회사 인사팀에 재직여부 확인해야 하는데 연락이 안된다고 전화가 옴.(전부 재택이라 전화 연결이 안 됨) 다른 카드는 이런 절차 없이 발급이 됐는데 재직증명서 다른방법으로 심사가능하냐고 물어봤지만 안된다고 답변받음.

4일차) 재직중인 회사가 상장사이면 발급이 되는데 상장사가 아니라서 심사가 안된다고 전화가 옴. 외국계 본사가 상장사이고 그 한국 지사인데 무슨 소리냐고 하니, "음... xxx은 조회가 되는데.... xxx코리아는 조회가 안되고요..." 그냥 카드 발급 안하겠다고 했음.

 

바로 현대카드 발급 신청했고 프로세스는,

1일차) 신청 즉시 문자로 신청접수 완료되었다고 오고, 상담원 전화이후 서류접수 이후 임시카드 발급 완료. 실물카드가 빨리 필요해서 빨리 배송해줄수 없겠냐 요청했고, 가능한 빨리 처리해주겠다고 함.

2일차) 배송 완료

 

KB카드는 매우 어처구니 없는 고객경험을 선사하고, 현대카드는 물흐르듯 감동적인 경험을 선사합니다. 그렇다면 이 두 회사의 재무성과에도 드러나겠죠?

 

Top line이나 Bottom line 모두 KB카드가 현대카드보다 좋습니다. 현대카드의 이익률은 단지 KB카드 뿐만이 아니라 카드업계 평균보다 못합니다. 그렇다고 고객 성장률이 높은 것도 아니고요. 현대카드가 디자인 경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에는 확실히 현대카드의 빠른 성장이 있었지만, 그 이후 현대카드의 행보는 지지부진합니다. 17년 유치한 투자자들 때문에라도 IPO를 해야 하는데, 원하는 밸류에이션으로 상장하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2. 하지만 현대카드가 특별하지 않은 이유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카드사의 핵심 비즈니스는, 즐거운 고객경험과는 별로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카드사가 돈을 버는 방법은 2가지입니다. 

1) 카드 가맹점으로부터 결제수수료를 받고 (1.8%) - 고객에게 포인트, 할인을 돌려줌 (1%)

2) 고객이 급전으로 사용하는 현금서비스(금리 20% 이상), 카드론(15% 이상) 대출

 

우리나라는 전세계적으로도 카드 가맹점수수료가 낮은 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카드사가 가져갈 수 있는 마진도 매우 적죠. 현대카드의 전략은 멋진, 브랜드 가치가 있는 카드를 만들면 고객에게 포인트 페이백을 많이 하지 않아도, 카드설계사들에게 모집비용을 때려붓지 않아도 고객들이 현대카드를 쓸 것이라는 거겠죠.

 

그런데 문제는, 이 전략은 2번째 돈을 버는 방법, "고객의 대출을 높은 금리로 극대화해야 한다"와는 잘 맞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먼저 사람들이 오해하기 쉬운, 높은 연회비의 프리미엄 카드가 카드사의 수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할께요.

 

일반적인 인식에서 "프리미엄 서비스"는 항상 회사에게 높은 마진을 가져다 주는 걸로 사람들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카드는 그렇지 않아요. 프리미엄 카드도 최소한 연회비만큼은 고객에게 페이백을 해 줘야 하고, 연회비로 남길 부분은 없으니 프리미엄한 고객이 백화점 같은 곳에서 많이 쓰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고객들은 현대카드의 개인 VVIP 카드를 쓰는 것이 아니라, 법인카드를 씁니다. 아니면 현금을 쓰죠. 법인카드 계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를 굳이 꼽자면 AMEX가 잡고 있고, 애초에 법인카드 자체가 브랜드이니 브랜드가 필요 없는 세계입니다. 거래 편의성 측면에서 은행계열 카드사가 더 유리하기도 하고, 거래 사이즈가 크다보니 페이백 성격의 혜택을 더 꼼꼼하게 챙기게 됩니다.

 

그래서 프리미엄 개인카드를 쓰는 사람들의 풀은 엄청나게 좁습니다. 법인카드는 못 쓰는 연봉 2억~10억원 사이의 소수의 초고소득자만이 고객이 됩니다. 게다가 이 사람들은 카드사의 다른 주 수입원인 현금서비스나 카드론을 쓸 확률이 0%죠.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현대카드 외의 카드사들의 전략은 다음과 같습니다. "카드를 뿌리고, 그 사람들이 대출서비스를 쓰기를 기대한다" 입니다. 페이백률이 5% 되는 말도 안 되는 적자카드가 나오고, 모바일 다이렉트 시대에 카드 모집 영업인들에게 높은 수당을 주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이런 영업환경에서 현대카드도 어느정도 페이백을 높이고 모집비용을 쓰지 않으면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잠식당하기 때문에 결국 비용을 태울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카드사의 목표는 다른 산업들과는 다르게 "고객감동"이 아닙니다.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을 쓸만한 신용등급 5~7등급 고객에게 우리 카드를 갖게 하느냐가 카드사의 핵심 문제이고, 그 사람들에게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금리를 제시하는 문자를 잘 보내는 게 경쟁력이니까요. 평소에 어떤 카드의 디자인을 좋아하냐 싫어하냐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죠.

 

지인은 KB카드를 버리고 현대카드를 발급받았지만 현대카드의 실적을 나쁘게 만드는 고객일 겁니다. 그 사람이 카드론을 쓸 일도 없고, 메인 카드도 아닌데 지원금 십몇만원을 줬으니까요. 현대카드는 최고의 서비스로 나쁜 고객을 유치했고, KB카드는 최악의 서비스로 쓸모없는 고객을 걸러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회사 운영 목표가 좋은 재무실적이라면, 분명 현대카드는 평균보다 뛰어나지 못합니다.

 

3. 그래서 남는 아쉬움

 

카드업은 금융업인 데다가 소상공인이 체감하는 비용이라는 점에서 아주 빡빡한 규제산업입니다. 이 때문에 거의 모든 면에서 가장 뛰어난 현대카드의 실적은 뛰어나지 않습니다. 현대자동차라는 매우 강력한 뒷배경이 있는데도 불구하고요. 고객만족과 회사의 실적이 불일치하는 구조가 카드산업만큼 큰 업계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현대카드의 혁신이 현대카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이루어졌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레드오션 규제산업이 아니라, 고객의 사랑이 바로 실적으로 이어지고 회사가 성장하고, 혁신의 에너지가 더 커질 수 있는 산업들도 많이 있습니다. 시장이 국내에 국한되지 않고 전세계 고객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유명한 세계 최고 기업들과도 경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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